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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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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보, 비가 와요. 여보,비가와요 / 신달자 아침에 창을 열었다 여보! 비가 와요 무심히 빗줄기를 보며 던지던 가벼운 말들이 그립다 오늘은 하늘이 너무 고와요 혼잣말 같은 혼잣말이 아닌 그저 그렇고 아무렇지도 않고 예쁠 것도 없는 사소한 일상용어들을 안아 볼을 대고 싶다 너무 거칠었던 격분 너무 뜨거웠던 적의 우리들 가슴을 누르던 바위 같은 무겁고 치열한 싸움은 녹아 사라지고 가슴을 울렁거리며 입이 근질근질하고 싶은 말은 작고 하찮은 날씨 이야기 식탁 위의 이야기 국이 싱거워요? 밥 더 줘요? 뭐 그런 이야기 발끝에서 타고 올라와 가슴 안에서 쾅 하고 울려오는 삶 속의 돌다리 같은 소중한 말 안고 비비고 입술 대고 싶은 시시하고 말도 아닌 그 말들에게 나보다 먼저 아침밥 한 숟가락 떠먹이고 싶다 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 오늘 여..
잠시 두기 잠시 두기 / 강미정 흙탕물 잠시 두면 저절로 맑아집니다 생각도 잠시 두면 저절로 맑아집니다
영혼의 가장 맛있는 부분 영혼의 가장 맛있는 부분 ― 다니카와 슌타로 신은 대지와 물과 태양을 주었다. 대지와 물과 태양은 사과나무를 주었다. 사과나무는 새빨간 사과를 주었다. 그 사과를 그대가 내게 주었다. 부드러운 두 손으로 감싸서 마치 세상의 시작 같은 아침의 햇살과 함께 아무런 말을 하지 ..
두 번은 없다 두번은 없다 -비슬라바 쉼보르스카- 두번은 없다. 지금도 그렇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아무런 연습없이 태어나서 아무런 훈련없이 죽는다. 우리가 세상이란 이름의 학교에서 가장 바보같은 학생일지라도 여름에도 겨울에도 낙제란 없는 법 반복되는 하루는 단 ..
수선화에게 수선화에게 / 정호승 울지 마라 외로우니까 사람이다 살아간다는 것은 외로움을 견디는 일이다 공연히 오지 않는 전화를 기다리지 마라 눈이 오면 눈길을 걷고 비가 오면 빗길을 걸어가라 갈대숲에서 가슴검은도요새도 너를 보고 있다 가끔은 하느님도 외로워서 눈물을 흘리신다..
오늘은 일찍 집에 가자 오늘은 일찍 집에 가자/ 이상국 오늘은 일찍 집에 가자 부엌에서 밥이 잦고 찌개가 끓는 동안 헐렁한 옷을 입고 아이들과 뒹굴며 장난을 치자 나는 벌서듯 너무 밖으로만 돌았다 어떤 날은 일찍 돌아가는 게 세상에 지는 것 같아서 길에서 어두워지기를 기다렸고 또 어떤 날은 상..
마흔/박성우 마흔    박성우        거울을 본다 거울을 보다가 거울 속으로 들어가 거울을 보고 있는 사내를 본다 광대뼈가 불거져 나온   마흔의 사내여, 너는 산다 죽을 둥 살 둥 살고 죽을 똥 살 똥 산다 죽을 똥을 싸면서도 죽자 사자 산다 죽자 사자 살아왔으니 살고 하루하루 ..
거리에 비내리듯... 거리에 비 내리듯 / 폴 베를렌 거리에 비 내리듯 내 가슴 속에 눈물이 흐른다 무엇일까 내 가슴 속 스며든 이 설레임. 대지에도 지붕에도 내리는  부드러운 빗소리여! 답답한 내 마음에 오, 비 내리듯 내리는 노래 소리여! 울적한 내 마음에 까닭 모를 눈물 내린다 웬일인가!  쌓..