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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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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걱정/기형도 엄마걱정 열무 삼십 단을 이고 시장에 간 우리 엄마 안 오시네, 해는 시든 지 오래 나는 찬밥처럼 방에 담겨 아무리 천천히 숙제를 해도 엄마 안 오시네, 배추잎 같은 발소리 타박타박 안 들리네, 어둡고 무서워 금간 창 틈으로 고요히 빗소리 빈방에 혼자 엎드려 훌쩍거리던 아주 ..
뒤처진 새 시를 좋아하는 당신에게, 그래서 돌아와 몸을 추스르고 가장 먼저 시를 배우러 나갔던 당신에게 소개하고픈 사람이 있어요. 라이너 쿤체라는 독일 시인입니다. 그의 시를 한국어로 옮긴 번역자는 당당히 말합니다. 요즘 세상에 시인이 누가 있느냐고 묻기라도 하면 “라이너 쿤체..
냉이꽃이 피었다 (사진출처:다음검색에서 가져옴) 냉이꽃이 피었다 - 안도현 네가 등을 보인 뒤에 냉이꽃이 피었다 네 발자국 소리 나던 자리마다 냉이꽃이 피었다 약속도 미리 하지 않고 냉이꽃이 피었다 무엇 하러 피었나 물어보기 전에 냉이꽃이 피었다 쓸데없이 많이 냉이꽃이 피었다 내 이 아..
가족 가족 - 최범영    아플때 아프다 말 할 수 없으면 가족이 아니다. 기쁠때 기쁘다 말 할 수 없으면 가족이 아니다.    달콤하고 부드러운 아이스크림만으로는 가족이 만들어지지 않는다. 아픔과 기쁨과 사랑 함께 나누고 기도하는 마음으로 오래 참아주며 함게 느낄 수 있을 ..
여보, 비가 와요. 여보,비가와요 / 신달자 아침에 창을 열었다 여보! 비가 와요 무심히 빗줄기를 보며 던지던 가벼운 말들이 그립다 오늘은 하늘이 너무 고와요 혼잣말 같은 혼잣말이 아닌 그저 그렇고 아무렇지도 않고 예쁠 것도 없는 사소한 일상용어들을 안아 볼을 대고 싶다 너무 거칠었던 격분 너무 뜨거웠던 적의 우리들 가슴을 누르던 바위 같은 무겁고 치열한 싸움은 녹아 사라지고 가슴을 울렁거리며 입이 근질근질하고 싶은 말은 작고 하찮은 날씨 이야기 식탁 위의 이야기 국이 싱거워요? 밥 더 줘요? 뭐 그런 이야기 발끝에서 타고 올라와 가슴 안에서 쾅 하고 울려오는 삶 속의 돌다리 같은 소중한 말 안고 비비고 입술 대고 싶은 시시하고 말도 아닌 그 말들에게 나보다 먼저 아침밥 한 숟가락 떠먹이고 싶다 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 오늘 여..
잠시 두기 잠시 두기 / 강미정 흙탕물 잠시 두면 저절로 맑아집니다 생각도 잠시 두면 저절로 맑아집니다
푸른 밤 푸른 밤 -나 희 덕- 너에게로 가지 않으려고 미친 듯 걸었던 그 무수한 길도 실은 네게로 향한 것이었다 까마득한 밤길을 혼자 걸어갈 때에도 내 응시에 날아간 별은 네 머리 위에서 반짝였을 것이고 내 한숨과 입김에 꽃들은 네게로 몸을 기울여 흔들렸을 것이다 사랑에서 치욕으로, 다시..
영혼의 가장 맛있는 부분 영혼의 가장 맛있는 부분 ― 다니카와 슌타로 신은 대지와 물과 태양을 주었다. 대지와 물과 태양은 사과나무를 주었다. 사과나무는 새빨간 사과를 주었다. 그 사과를 그대가 내게 주었다. 부드러운 두 손으로 감싸서 마치 세상의 시작 같은 아침의 햇살과 함께 아무런 말을 하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