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이 학교에 안 가는 날은 대체로
모든 게 순조롭다.
우선 며느리의 얼굴이 펴지니 좋다.
오전에 며느리가 한국에서 재택근무
일감을 맡게 되었다고 집에 남아서 일하고
아들과 세현이를 데리고 코스트코에서
장을 봐왔다.
집에 삼식이 세 명이 있다 보니 먹는 게
장난이 아니다. 양파, 감자, 계란, 우유 같은 게
금방금방 소진된다. 내가 오기 전에는 주로
사 먹거나 시리얼, 빵 같은 걸로 해결을 많이
했었다고 한다.
오늘 점심은 김치, 양배추, 오이, 약고추장을
넣어 비빔밥을 해 먹었다.
오후에 아들은 공부한다고 아파트라운지로
가고, 세현인 낮잠 들었고, 며느린 재택근무 일을
하고, 나는 할 일이 없어 아파트라운지에서 카푸치노
한잔 빼서 마시면서 성경책을 조금 읽고는 산책.
날이 역시 청명하고 너무 좋다.
이런 좋은 날엔 자꾸 사진을 찍게 된다.
맨날 그게 그 풍경인데도...
여기도 겨울이라서 춥다. 그래서 수영하는
사람 한 사람도 없는 날이 많은데도 수영장에
물은 항상 가득 채워놓는다.
한여름엔 너무 뜨거워서 수영을 할 수없다고 한다.
피닉스라서 그나마 이만한 아파트에 살 수
있다고 한다.
LA만 해도 이 정도 아파트면 월 300만 원은
줘야 한다고 한다. 여긴 그 반값에 살 수 있으니
정말 감사하지 않을 수없다.
하지만 아들네의 삶이 꼭 고립된 섬에서
사는 것 같다.
사람들이 비교적 많이 사는 아파트에 살지만
인종이 다르고 언어가 다르고 아는 사람도
없으니 고립된 섬에서 사는 거랑 다를 바가 없다.
며느리가 이 말에 격하게 공감한다. 그래서 너무
외롭다고...
그런데 일감이 생겨서 좀 덜 외로워할 거 같다.
세현인 낮잠을 두 시간이나 자고 기분이
좋은지 잘 논다.
저녁땐 오전에 장 봐온 소고기를 아들이
바베큐장에서 구워와서 스테이크로 먹었다.
밖에서 먹기엔 약간 쌀쌀한 날씨라서
고기만 바베큐장에서 구워왔다.
여기도 일교차가 심해서 세현이를 비롯해서
모두 감기기운이 있다.
소스는 맛소금, 참기름, 후추를 믹스한
참기름장소스. 사이드디쉬는 김치깍두기ㅎㅎ
우리 입맛에 맞춰서 먹으니 레스토랑에서 먹는
스테이크보다 훨씬 맛있었다.
세현인 떼도 덜 부리고 우는 횟수도 많이
줄었다. 잠자는 건 더욱 안정되었고...
내가 돌아갈 때쯤엔 더 좋아지겠지.
집에 돌아갈 날을 손꼽아 기다리면서도
아들네를 놔두고 갈 생각을 하니 마음이
무겁다.
잘해나갈까 염려가 되고 손자를 못 볼 거
생각하니 벌써 눈물이 앞선다.
이 녀석이 벌써 할미를 놀려 먹는다. 먹을걸
주는 척하다가 자기 입으로 넣는다. 할미를
놀려먹고는 좋아서 손뼉 치며 웃는다.
백발백중 내가 속는다. 이 녀석 얼굴에
개구쟁이끼가 가득하다.
처음 왔을 때보다 모든 게 다 업그레이드
되었으니 이대로만 잘해나간다면 크게
걱정할 게 없을 거 같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그랜드캐년에서 중상을 입고 병원에 입원해
있다는 한국학생 얘기가 여기서도 화제다.
억대의 병원비...
그 학생이 우리가 여행하다 들렀던 플래그스태프라는
곳에 입원해 있다고 한다.
거기가 그랜드캐년에서 가까운 도시이다 보니
거기 입원해 있는 모양이다.
며느리가 의료보험이 안돼서 의료보험이
없는 상태이다 보니 혹시 아파서 병원 갈 일
생길까 봐 늘 걱정이라고 한다.
아들은 유학생의료보험이 되고 세현인 미국국적이니
당연 의료혜택이 있는데 며느리만 빠져있는 상태이니
아플까 봐 걱정이다.
정말 기도밖에 없다는 생각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