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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 김동명

시류와역류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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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사체험이야기 2006/12/25 11:56

  http://blog.hani.co.kr/philcabin/3413

 

이 현실의 문제성은 다른 시각에서 달리 지적될 수도 있습니다. 우리의 작금 수 십 년 이래의 염원이 이성이 지배하는 정치이지만 근래 언제나 그랬던 것처럼 마치 숙명이기라도 하듯 이 땅에서는 이번에도 정서가, 감정이 바람을 일으켜 정치력의 판세를 단번에 뒤집어 놓는 괴력을 발휘한 것입니다.

 

  이 정서는 박정희가 나라를 다스린 시절에 대한 향수가 되기도 합니다. 이것은 한 목표를 향하여 모든 것이 일사불란하게 움직였던 박정희의 권위와 이 권위의 시대에 대한 찬탄 어린 회상의 향수입니다. 그 때를 이렇게 되돌아보는 눈길은 실은 오늘 이 땅에서 벌어지는 모든 것에서 오직 분란과 혼란만을 찾아보는 바로 이 시선이기도 합니다. 이 시선의 임자에게 박정희시대가 그렇게 회고되었다고도 하겠습니다. 어쨌든 이 회고의 향수가 박근혜를 통해 한나라당이 이 땅의 정치판도의 반을 차지하기까지 기사회생시킨 것입니다. 한마디로 일제의 잔재는 여전히 무서운 현실로서 건재하고 있는 것입니다.

 

  일제의 잔재가 어느 만큼 그 동안 8.15 이후의 현대사를 혼미의 구렁텅이에 던져 넣었는가를 우리는 병력을 이끌고 반란을 일으킨 박정희의 행보와 행태에서 확인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그 혼미의 실상 바꾸어 말하자면 그 잔재의 역사적 해악의 실상이 그로써 다 밝혀진 것은 아닙니다. 이 실상은 박정희를 우러르며 그의 통치시대에 향수를 갖는 인간들에게 비친 이 때의 혼란의 실체와 박정희 통치시대의 일사불란의 실상이 분명히 되었을 때 밝혀질 것입니다. 오늘 이 땅의 주민들이 당면하고 있는 국가적 현실의 근본을 밝혀 줄 핵심 과제도 바로 그 실체와 실상을 밝히는 일이 됨은 재론할 여지가 없습니다. 사실 화자는 이 근본적인 문제에서 1910년 이후 한국현대사의 중심 과제 아니 고려조와 조선조 천년의 이 땅의 주민의 존재방식의 종막(終幕)을 의미하는 광고(曠古)의 역사적 과제를 찾아봅니다.

 

  지금의 혼란은 현 집권자가 권위정치의 청산을 위해 펴고 있는 시책에 기인한다고 볼 수도 있겠습니다. 그는 이제까지 대통령이 소속 정당을 전횡적으로 지배해 온 관습을 깨고 당정분리를 선언합니다. 한편 관권이 중앙에 집중했었던 체제를 고쳐 그것을 지방자치기관에 분산시키는 지방분권화를 적극적으로 추진합니다. 요컨대 생활 중심권의 다원화를 기도하고 정착시키고자 한 것입니다. 그리고 그 자신은 탈권위의 보통 사람 대통령으로 자임합니다.

 

  한마디로 현 대통령이 그 직에 취임하면서 이 땅에서는 지난날과 같은 초헌법적 무소불위의 권력의 압도적 권위도 그를 이어 또다시 쿠데타로 정권을 갈취한 통치자들의 역시 초법적인 협박과 강압으로 일관한 절대 권력과 위압적인 권위도 사라지게 된 것입니다.

 

  실상 이들의 권위의 바탕은 공포였습니다. 이제 이 공포가 사라진 것입니다. 현 집권자는 인습이 되어버린 불법적인 권력 행사에 종지부를 찍겠다는 것이고 스스로 위압적인 권위로부터 벗어나겠다는 것입니다. 그 누구에 대해서도 작위적인 권위로부터 자유로운 보통인간 대통령으로 보이려고 애쓰는 것 같아 보입니다. 때에 따라서는 지나칠 정도로 직설적인 화법의 보통 인간의 어휘를 입에 담기까지 합니다.

 

  당연히 이 같은 그의 소신이나 언행이 그의 대통령직 수행 자체의 잘 잘못이나 공과를 따지는 리스트에 들 까닭이 없는 것들입니다. 물론 그의 대통령 취임 이후의 국정 현황에 대하여 야당과 동조세력이 비판적으로 지적하는 국정 혼란의 원인이 현 대통령이 보여 주고 있는 위와 같은 대통령상(像)에 있을 까닭도 없습니다. 오히려 대통령이 대통령으로서의 권위를 지키지 못하고 대통령으로서 제 구실을 못해서 국정의 혼란이 온 것이라면 그 원인 제공자가 바로 야당 자신임을 누구보다도 야당 자신이 잘 알 것입니다.

 

  대통령이 되어서 국회에서 첫 국정 연설을 하는 날 야당의원들은 모두 자리에 앉은 채로 대통령의 입장을 맞습니다. 하늘아래 어디서도 볼 수 없는 철저한 멸시를 공공연히 보인 것입니다. 그런데 입장한 것은 누구였는가? 그는 다름 아닌 대한민국 대통령이었던 것입니다. 대한민국의 국회의원들이 대한민국의 대통령을 필경 대한민국을 멸시하고 모욕한 것입니다. 대통령 자리를 놓쳐버린 분통과 앙심이 대한민국의 국회의원으로 하여금 그의 나라에 춤을 뱉는 행동을 취하게 한 것입니다. 화자는 이들에게서 신상(身上)의 이익을 위해 「민족」의 이름을 헌 고무신짝처럼 내던진 일제시대의 추악한 그들의 선대(先代)의 모습을 봅니다. 화자는 또한 그의 권력욕 앞에서는 국가의 존망도 해방된 땅의 겨레의 염원의 결집체인 헌법도 휴지조각에 지나지 않았던 패망한 일제가 이 땅에 남겨두고 간 한 「일본군」의 잔당의 방자한 체질적인 반역의 혈통을 이들의 행태에서 확인하는 느낌을 뿌리치지 못합니다.

 

  이 같이 스스로 악감정의 노예가 되기를 서슴지 않은 소위 야당이 절대 다수의 의석을 차지하는 국회를 끼고 그 당이 대통령으로 인정하기 싫고 무시해마지 않는 소수당의 대통령이 어떻게 제 구실을 할 수 있는지는 물을 것도 없는 일일 것입니다. 실상 대통령탄핵소추안 가결로 마감한 그동안 건건의 정책 차질 등 국정 혼란이 이 물음에 대한 웅변의 답이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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