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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 김동명

시류와 역류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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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blog.hani.co.kr/philcabin/3392

*요즘 벌어지고 있는 일과 관련이 있어서

순서와 관계없이 옮겨와 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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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쯤에서 화자는 똑같이 일등생만 들어갈 수 있는 사범학교를 나온 수재였고 빈곤한 가정에서 자란 점에서도 같은, 그러나 생애의 행로는 정반대 쪽으로 택한 어떤 사람을 선생님과 한 자리에 놓고 생각하게 됩니다. 그리고 두 사람에게서 당시 똑똑한 젊은 조선인 지식인이 취할 수 있는 매우 대조적인 인생의 선택을 찾아봅니다. 이 어떤 사람은 박정희입니다.

 

  화자는 왜정 하에서의 박정희의 인생행로의 선택이 해방 정치사의 오욕의 비극을 이미 예언적으로 암시해 주고 있음을 보게 됩니다. 청년 박정희는 사범학교 졸업 후 의무 봉직 기간을 마치자 만주국 장교로서 입신할 목적으로 만주 군관학교에 입학합니다. 이 괴뢰 국가는 일찌기 일본의 중국 침략의 기지였고 언제 터질지 모를 소련과의 전쟁에 대비하는 일본의 전초 기지였습니다. 그가 일본 국적을 등에 업고 일본 괴뢰국가의 군 장교의 길을 택한 것은 요직과 고속 진급의 보장을 노린 절묘한 계산이었다고 하겠습니다. 그는 뽑혀서 대일본제국의 간성을 기르는 일본 육사에 들어갑니다. 이렇게 그는 효과적인 만주의 지배와 군사기지화를 획책하는 일본 군국주의자들의 회심의 심복이 되는 과정을 밟아갑니다. 이 같이 청년 박정희가 선택한 것은 만주행을 통해 실은 대일본제국의 골수 정예 군인이 되는 지름길이었습니다.

 

  화자는 위 두 조선인 청년에게서 그 시대의 매우 대조적인 조선인의 존재방식을 대합니다. 오직 이기적인 욕망의 충족이 행위의 동기가 된 자와 동기를 사회적 이상의 실현에 두고 있었던 자의 존재방식이 그것입니다.

  전자의 행위의 공간은 권력욕이나 소유욕과 같은 본능적인 욕망의 세계입니다. 이 세계에서는 본능이 이성을 지배하고 복속(服屬)시킵니다. 이성은 다만 욕망의 달성을 위한 도구의 구실을 할 뿐입니다. 이렇게 욕망의 성취가 지고의 목표가 되고 모든 일이 이 목표의 관리 하에 있는 공간에서는 이치 자체가 지배원리로 작용하는 진정한 대화가 애초에 있을 수 없음도 물론입니다. 그런데 정치의 터전은 대화입니다. 정치가 연출되는 최고의 무대라고 할 국회도 대화의 마당인 것입니다.

 

  그럼에도 실제 권력욕의 화신과 같은 자가 권좌를 차지한다면 도대체 무슨 일이 벌어지게 되는가? 정치의 실종이 그것일 것입니다. 권력욕의 화신과도 같은 자에게 정치는 없는 것입니다. 정치는 없고 통치만, 대화는 없고 오직 명령만이 있게 될 것입니다. 필경 국가는 거대한 병영(兵營)이 되는 것입니다. 실상 이것이 후일 박정희의 통치하에 있었던 대한민국의 실상입니다. 명령하는 것과 순종하지 않은 자의 처단이 그의 소위 정치행위의 전체가 된 것입니다.

 

  물론 그도 정당을 만들기도 했지만 이것도 권력을 생산 유지하기 위한 가장무대의 술책에 지나지 않았습니다. 그에게 있어 최고 통치권은 무소불위의 명령권을 의미했고 그는 이것을 탐하여 혁명을 일으켰으며 이것에 맛을 들였고 종내 총살로 제동이 걸리기까지 그 권력의 화신(化身)의 추악한 생을 산 것입니다.

  박정희와는 달리 행위의 동기가 이상적 사회의 실현에 있었던 전자는 한마디로 이성의 사람입니다. 먼저 그의 관심이 누구에게서도 인정될 수 있는 사회적 선(善)이 무엇인가에 있었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즉 그는 무엇보다도 먼저 묻고 사유하는 이상주의자였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해방된 이 땅의 비운은 새 나라가 출범한 당초부터 자신의 집권 욕을 위해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는 자가 권좌에 오른 데서부터 비롯합니다. 초대 대통령이 집권 연장을 위해 구미에 맞도록 나라의 기틀을 뜯어고치더니 2대 대통령을 강제 퇴진시키고 3대 대통령이 되어 통치권을 거머쥔 자는 무력으로 헌법기능을 정지시키고 나라의 숨통을 끊은 뒤 새 나라를 세우고 권좌에 앉은 자였습니다. 그는 종내 그의 통치에 대한 이어지는 반항에 무자비한 탄압으로 세월을 보내게 됩니다. 한마디로 그의 통치시대는 반항과 탄압의 시대가 된 것입니다.

 

 따라서 3공화국시대의 본질적인 성격은 이 반항과 탄압의 본질과 의미가 밝혀질 때 비로소 분명히 될 것입니다. 화자는 그 반항과 탄압에서 8.15의 민족사적 의미와 함께 일제시대의 조선인의 존재의 실상을 떠올리게 되면서 바로 일제시대의 잔재가 해방된 땅의 한 시대를 지배한 사실을 확인하게 됩니다. 그 반항과 탄압의 본질은 무엇인가? 이것은 어떠한 민족사적 의미를 갖는가? 무엇보다도 병력을 이끌고 반란을 일으킨 박정희는 어떠한 자였는가?

 

  만주 군관학교 생도 시절 중국인 동창생의 눈에 영락없는 일본인으로 비쳤던 그는 뽑혀서 「대일본제국」의 간성을 기르는 일본 육사에 진학합니다. 이런 과정을 거치면서 그에게는 그가 충성을 바친 「萬世一系」의 천황의 나라의 생태적인 반민주의 전체주의 사고방식과 군국주의시대 일본군 장교의 안하무인의 엘리트의식이 골수에 박힙니다. 그러나 일본은 패망했고, 만주국은 소멸합니다. 그렇지만 그는 국군장교에 임관됨으로서 군복을 걸친 채 8.15의 시점을 건넌 셈이 됩니다. 여기서 화자의 눈길은 그의 중국인 군관학교 동창생에게 끌리게 됩니다. 그들에게는 8.15가 그와는 딴 판의 운명이 기다리는 시점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그와 같이 군복을 걸친 채 8.15의 시점을 통과하지 못했을 뿐더러 그들에게는 평생토록 어떠한 취업의 길도 차단 된 것입니다. 중국 땅에서 벌어진 역사청산은 이러했습니다.

 

  물론 비단 박정희뿐만 아니라 38선 이남 땅에서는 어떠한 악질 친일분자도 일제시대와 그 후 시대를 가르는 8.15의 시점을 무사 통과합니다. 역사청산은 없었던 것입니다. 정부 수립 후에도 역사 청산은 없었고 반민특위마저도 때의 국정책임자에 의해 중도에 해체됩니다. 해방 반세기 지나 이완용의 손자와 송병준의 손자가 나타나 부일 매국노 부일 반역자의 재산을 찾아갑니다. 어느 때인가는 월북 시인의 형제가 남북 이산가족 상면의 TV중계 장면에서 아버지가 시집 한 권 분량의 일어의 창작시 20편을 남겼다는 소식을 전하면서 감읍하는 꼴을 보이기도 합니다.

 

  이 모두는 세기가 지나가도록 일제시대의 역사청산은 이루어지지 않았음을 웅변으로 일러주는 장면일 것입니다. 해방은 찾아왔지만 이 땅에서 그것은 반 조각이 된 것입니다. 비록 일제의 식민지 통치로부터 해방되었으나 일제<시대>로부터 해방되지는 못했기 때문입니다. 그 시대의 역사청산이 없었을 뿐더러 오히려 그 시대의 잔재가 해방이후의 시대를 지배한 것입니다. 군부가 그러했고, 문단이, 정치무대가, 행정 사법기관이 그러했으니 그 지배는 총체적이었다고 해야 옳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