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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 김동명

시류와 역류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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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http://blog.hani.co.kr/philcabin/3393

 

이 이야기의 당장의 관심은 일제시대의 조선인의 한 존재방식의 전형을 보여준 박정희의 해방 이후의 행로와 행상(行狀)의 본질적인 성격과 의미를 구명하는 데 있습니다. 5.16반란행위가 여러 면에 걸쳐 갖는 의미의 중대성 때문입니다. 이 의미가 밝혀졌을 때 역설적으로 비로소 8.15의 의미와 8.15 이후 사(史)의 행로의 기본성격도 투명하게 드러날 것입니다.

  군관학교 중국인 동창생 보기에 일본인 이상으로 행동거지가 일본인이었던 그는 뽑혀서 이 땅을 정복 지배한 대일본제국의 간성을 기르는 육사를 나온 천황의 충직한 군인이었음에도 역사청산의 심판대 위에 세워지지도 않았고 그렇다고 스스로 자신의 과오를 자책 회오하는 일도 없이 해방된 땅을 밟습니다.

  그의 행로는 단지 망해버린 나라에 작별하고 새로운 기회의 땅에 들어선 것을 의미할 뿐이었습니다. 이 이행의 절차로 그는 일본인 이름을 한국인 이름으로 일상어를 일어에서 한국어로 그리고 일본 괴뢰국 군복을 국방경비대 군복으로 바꿨을 뿐입니다. 즉 외양만 이렇게 변했을 뿐 인간 박정희의 실체에는 변함이 없이 그는 전과 같이 지위 상승을 위해 모든 수단을 동원합니다. 반면 그가 놓인 상황에는 엄청난 변화가 일어나 지위 상승의 대상이 고위 군직에서 국가 최고 권력자로 바뀌게 됩니다. 이 변화가 박정희에서의 8.15의 의미일 것입니다. 박정희에게 역사청산의 자기갱신이 없었다는 것은 이 같은 상황변화를 딛고 취한 그의 행보와 행태에서 곧장 드러납니다.

  눈의 가시가 되는 남의 나라 왕비를 참살하기 위해 그 궁중에 쳐들어간 방자한 왜놈 무법자들의 행동 그대로 박정희는 무력집단을 이끌고 왜적으로부터 해방된 땅에 세워진 나라의 숨통을 단칼에 끊어버립니다. 그리고 그 빈터에 세운 나라에서 스스로 최고 통치자의 자리에 오릅니다. 천황의 권세가 이 땅에서 사라지면서 천황의 존재와 충의의 제동장치가 그에게서 치워지자 하루아침에 방자해진 지위 상승의 끝없는 탐욕의 사나이는 그를 가로막는 어떠한 것도 국가의 기틀인 헌법이든 국가조직의 기강이든 안중에 없음은 물론 오히려 그것에 역심(逆心)을 품습니다. 민족의 운명조차도 개의할 바가 되지 못합니다. 이것은 그가 한때 반란을 획책하고 있었던 군내 좌익 집단에 가담했던 사실에서도 또 6.25 전쟁 중의 부산 정치파동 때 헌법 수호를 외치는 민주세력을 분쇄하기 위해 계엄령을 선포해 놓고 계엄군으로 일선 부대의 차출을 요구한 이승만의 명을 따르지 않은 탓으로 참모총장직에서 진해의 육군대학장으로 좌천되어 가 있는 이종찬 장군을 찾아 가 쿠데타를 일으킬 것을 제의한 사실에서도 명백합니다. 때는 나라의 운명이 걸린 전쟁 중이었음에도 그는 쿠데타를 생각한 것입니다. 그의 짐작으로는 대통령의 홀대에 앙앙불락 불평 불만에 차 있을 이 장군이 쾌히 응할 것이었습니다. 그렇지만 그가 찾아 간 상대는 그와는 하늘과 땅만큼이나 정신의 경위(境位)와 인품의 격이 다른 인물이었습니다. 그는 일언지하에 거절당합니다. 일제시대 만군 중위의 위치에서 보면 까마득한, 장교가 소수 엘리트 집단을 이루고 있었던 일본군 중좌(령)의 고급장교였던 이종찬 장군은 그러나 세습으로 백작 작위를 물려받자 이 작위를 반납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고위의 그러나 그로서는 부끄러운 일본 귀족신분을 버린 것입니다. 또 고급장교였음에도 그는 끝내 창씨개명을 하지 않은 채 지냅니다. 이렇게 지낸 그였지만 8.15 해방이 되자 두문불출합니다. 민족 앞에 스스로 부끄러웠던 것이며 죄 지은 자의 칩거에 들어간 것입니다. 이런 그를 김홍일 장군이 억지로 끌어내어 건군의 일익을 담당케 한 것입니다. 물론 그가 다시 걸치게 된 군복은 그 스스로에서는 참회한 자가 자기 죄를 보속하기 위한 봉사의 표지였습니다. 일선 부대를 빼돌리라는 권력욕에 눈이 먼 대통령 명령에 대한 단호한 불복종은 민족을 위한 봉사와 헌신의 길의 군인으로서는 너무나 당연했는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이 때문에 그의 관사는 불측의 사태를 염려한 미 8군의 헌병들에 의해 경호됩니다.

  한마디로 위의 이야기는 일본의 통치하에서 나타난 극단적으로 서로 다른 현존의 모습을 보인 두 인물이 어떻게 서로 판이한 모습으로 8.15의 시점을 건넜고 그 후의 민족사에 남긴 족적이 서로 달랐는가, 말하자면 한 쪽은 어떤 결정적인 죄과를 해방 후에도 또 다시 저지르게 되었는가를 기록해 본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