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사나 학부모는 그렇다 치지만 학생들에게는 조금 더 심각하게 생각해 볼만한 일이다. 학생들은 아직 미완적인 존재이다. 꿈을 찾아야 하는 시기이며 학창시절의 하루하루가 이들에게는 중요한 시간이다. 초등학교 1학년 아이들을 3년째 가르치는 나로서 가장 놀라웠던 것들 중 하나가 반 아이들 거의 대부분이 학원을 두 개, 세 개씩 다니는 것이었다.
물론 가족이 모두 일을 나가 돌봐줄 사람이 없어서라든지 지역적인 특성상 집과 학교가 멀어 차편이 없어서 학원 차를 이용하기 위해 보낸다는 것은 이해할 수 있지만 학원에 가야 공부를 하니까, 학원에서 부족한 공부를 보충하려고 보낸다는 것은 안타까운 부분이었다. 아이들은 워낙 어린 시절부터 학원을 다니다보니 학교보다는 학원이 먼저였고 그런 아이들에게 학교가 더 중요하다는 것을 인식시키는 데에 꽤나 노력을 들여야 했다.
특히나 도시 지역은 두말할 나위도 없이 거의 모든 학생들이 학원을 다닌다. 기회가 있어 5년 전에 대도시지역의 6학년 학생이 쓴 일기를 보게 되었는데 ‘학원, 과외가 끝나고 숙제를 하면 늘 12시가 넘는다’는 내용이었다. 고등학생에게나 있을 법한 일들이 지금은 초등학생들에게도 나타나고 있다. 자발적으로 학생이 원해서 다니는 경우라면 모를까 그 밖의 경우라면 당장 그만 두라고 말리고 싶다. 본인이 원하지 않고서야 학원에서 하는 수업은 ‘쇠귀에 경읽기’가 될 수밖에 없다.
대부분의 학부모와 학생들은 ‘시험’을 두려워한다. 시험은 남과 나를 비교하는 객관적 잣대가 되기 때문이다. 그 결과에 따라 미래도 어느 정도 결정지어지는 것도 사실이다. 사교육이 우리나라에 번성하는 이유도 시험에 있다. 워낙 교육정책이 갈피를 잡기 힘들 정도로 바뀌다보니 정부를 믿기보다는 사교육에 의존하여 불안감을 해소하려는 심리가 강하기 때문이다.
시험을 중요시한 나머지 시험은 우리의 목표를 달성시켜주는 ‘수단’이라는 것을 망각하고 시험 그 자체가 목표가 되어버린 경우도 많다. 시험점수 그 자체가 목표인 가정을 의외로 주변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다. 고시촌에서도 그런 사람을 볼 수 있으며 해마다 자신의 수능 점수를 비관하여 재수, 삼수, 그 이후에도 몇 년씩 수능을 치며 적성과 상관없이 명문 대학의 높은 점수의 과만 노리는 사람도 있다. 자신의 점수에 만족하지 못할 경우 심하면 자살에 이르기도 한다.
‘시험’이 인생의 열쇠는 될 수 있지만 우리 삶을 지배한다면 비참할 것이다. 당장의 시험공부에 급급하기보다는 현명한 학부모라면 ‘인생공부’를 가르칠 것이다. 그것은 학교에서는 얻기 힘든 개인적 경험 같은 것이다. 시험을 어떻게 보는지는 학교에서 배울 수 있다. 그러나 인생을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는 오로지 경험밖에는 왕도가 없다. 다양한 개인적 경험을 가질 수 없다면 독서도 한 방법이 될 수 있다.
시험보다는 진정한 깨달음과 가치 있는 경험을 쌓아주는 것이 우리 아이들에게 더 의미가 있고 희망이 된다. 정신없이 바쁜 하루를 보내면서 유일한 낙이 있다면 학교 도서관에 들러 책 읽는 아이들을 잠시 바라보는 일이다. 늘 장난만 치는 것 같아도 점심시간 안면초등학교 도서관에 가보면 삼삼오오 진지하고 의젓하게 책을 읽는 아이들이 있다. 그런 아이들을 보면 그래도 ‘우리 교육, 우리나라에 아직 희망은 있구나!’하는 생각이 든다.
많은 사람들이 ‘인생의 목표가 무엇입니까?’라는 물음에 ‘행복해 지는 것’이라고 대답한다. 사람들은 마음속으로는 행복을 추구하면서도 소박한 행복에 만족하기 보다는 ‘시험’이라는 행운에 더 기대려고 하는 것 같다. 배움을 학원에서, 혹은 학교에서 얻는 지식에 한정지으려고 하면 우리가 얻을 것은 매우 적다. 주변을 둘러보면 모든 것이 우리의 스승이다. 눈을 넓혀 주변을 둘러보자. 그러면 인생이 달라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