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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 김동명

[스크랩] 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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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후기


  뒤늦게 화자는 한 친지로부터 경북 영양군 일월면 주곡리 한양 조씨 문중마을은 주민 전체가 창씨개명을 거부했었다는 한 간행물에 난 놀랍고도 신기한 이야기를 전해 듣습니다. 물론 이 때문에 마을 주민이 모두 잡혀가지는 않았습니다. 법으로 강요된 것이 아니었음으로 이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기도 했을 뿐더러 오히려 마을 전체가 창씨를 하지 않은 것이 당연한 것 일수도 있었던 것입니다. 그렇지만 세태는 아주 딴 판이어서 주곡리 마을에서 벌어진 일이 오히려 신기하고 놀라운 일이 되어버린 것입니다. 도대체 무엇이 그 마을사람들로 하여금 통치자의 뜻에 맞서게 했고 도도한 세태의 흐름까지 거스르게 했었는가?

  아마도 마을 전체가 그렇게 나선 것을 보면 한양 조씨 가문과 여기에 속하는 자로서의 그들의 자존심과 자긍이 일본인의 성과 이름으로 제 이름을 바꾸는 수치를 거부케 했을 것입니다. 그리고 그들에게는 이 모멸감과 수치심은 동시에 그들의 가문과 그들 자신이 구성원이 되는 조선의, 조선인으로서의 자신의 모멸이며 치욕이 되기도 했을 것입니다. 그렇지만 실상 삼천리 방방곡곡의 마을에서는 모두가 성을 갈고 이름을 일본인의 것으로 바꿉니다.

  여기서 한 번 생각해보게 됩니다. 그 때 만일 조선의 모든 마을에서 주곡리 조씨 마을에서와 같은 일이 벌어졌더라면 조선 민족의 소멸 책으로 허구에 찬 내선일체의 교언(巧言)으로 창씨 개명을 꼬시는 자의 면상에 통격을 가하게 되는 이보다 더한 통쾌한 멋진 일이 또 무엇이 있었겠습니까? 필시 그 무렵 총독부가 거침없이 몰아간 조선처녀를 「여자정신대(挺身隊)」의 이름으로 군 위안부로 징발한 것과 같은 강압적인 시책은 조선민중이 보여준 살아있는 정신에 놀라고 그 기개에 눌려서 아마도 주춤하지 않을 수 없게 되었을 것입니다.

  일은 여기에 그치지 않고 해방 후에까지 미치게 될 것입니다. 감히 이러한 살아있는 정신과 드높은 기개의 민중을 상대로 왕조적 의식 그대로의 권좌의 노인이 어리석은 백성을 타이르는 「유시(諭示)」를 내린 일은 두말한 것도 없고 종신 집권은 꿈도 못 꾸었을 것입니다. 국권을 손아귀에 넣기 위해 일개 만군 중위 출신의 일본군 잔당이 무장한 졸도들을 거느리고 수도에 쳐들어간다는 것도 상상도 못 할 일이었을 것도 틀림없습니다. 자신이 분골쇄신의 충성을 바쳤던 일제에 대하여 그렇게 당당하게 저항한 정신과 기개 앞에서 일제가 패망한 마당의 그는 부끄러워 쥐구멍을 찾아야 할 주눅이 들 수밖에 없는 자였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실상 권좌의 노인은 「諭示」를 내렸고 종신집권까지도 획책합니다. 일본군 잔당은 거침이 없이 국가를 뒤엎어 버립니다. 기실 이 땅은 걸릴 것이 없는 무인지경이나 다름없는 산 송장의  땅이었기 때문입니다. 조선 천지에 경상북도 영양군 일월면 주곡리 같은 마을은 오직 그 하나밖에 없었다는 사실이 바로 이 엄연한 현실의 증좌일 것입니다.

  주곡리 마을 출신의 시인 조지훈은 그의 시 세계와는 상관이 없는 지조(志操)에 관한 한 편의 담론을 꽤 공을 들여서 엮습니다. 그는 이 『지조론(志操論)』에서 「지조는 선비의 것이요 교양인의 것」이며 지도자의 구비 조건도 된다고 논시합니다. 이렇다면 지조는 보통사람과 무관하다는 이야기가 되겠지만 그러나 또 그는 지조를 저버린 자를 정조를 버린 여인과 한데 묶어 논단하기도 합니다. 생명처럼 소중한 것을 버린 점에서 같다고 보았기 때문입니다. 화자는 이 논리를 일제치하에서 정복자의 뜻에 영합하여 자신의 이름 석 자를 서슴없이 버리고 정복자와 같은 이름을 받아들인 조선인들에게 갖다 대어봅니다. 근본에 있어 이들 3자 사이에 무슨 차이가 있는가? 사람에게 있어 내가 누구이다 라는 것 보다 중요한 것이 무엇이겠습니까? 그런데 그가 누구임을 밝히는 것이 그의 이름일진대 그에게 이름보다 소중한 것이 무엇이겠습니까? 일제치하의 조선인은 모두 그의 지배자에 영합하여 이 자신의 이름을 버렸으니 어떤 변절자나 정조를 버린 여인 앞에서도 떳떳치 못하기로는 매일반이었던 것입니다.

  조지훈의 지조론에는 이익을 탐하여 또는 강압에 굴복하여 지켜야 할 것을 저버린 부끄러운 삶에 대한 질책이 함축되기 마련이라면 그런 글이 변절자에게서 나올 리는 만무입니다. 또 그 글은 시인 조지훈의 글이라기보다 역사 앞에서 청청할 수 있었던 영양군 일월면 주곡리 한양 조씨 마을 출신의 한 문사의 스스로에 대한 드높은 긍지의 글이라고 봄이 옳을 것입니다. 이 긍지를 지닌 자가 세상을 향하여 그 같은 경세(警世)의 붓을 든 것입니다.

  해방 후 정치사의 혼미와 민주궤도의 일탈은 그 근원을 8.15를 맞아 새 역사의 첫 걸음을 내디딘 자들의 실체에서 마땅히 찾아야하는지도 모릅니다. 그들은 역사를 정면으로 대응하고 감연히 결단을 내려야하는 국면에서 오히려 움츠려 들고 몸을 뒤로 빼는데 이력이 난 축들이었기 때문입니다. 이들이 새 시대를 맞은 것입니다. 삼성출판사의 『새 우리말 큰 사전』의 기사를 따른다면 「여론에 의해」반민특위는 해체되었고 이렇게 일제시대 청산 즉 3천만의 자괴(自愧)의 자아 청산은 없었습니다.

  역사의 행보가 제 길에 들어선 것은 새 교육을 통하여 자유와 민주의 이념의 세례를 받은 이로써 정신적으로 과거로부터 단절된 새로운 정신적 혈통이 시작되는 8.15 이후세대의 궐기와 희생에 의해서입니다. 4.19와 광주항쟁과 6월 시민 봉기는 이 땅에서 새로운 혈통의 민중의 등장과 이들에 의한 구시대의 청산과 새 천년사의 도래를 알리는 세기의 봉화일 것입니다.




출처 : 한 작은 풀꽃의 현대사 체험이야기
글쓴이 : 비탄과 희망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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