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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 김동명

[스크랩] 한 작은 풀꽃...(시인의 전원과 시대의 거리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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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희는 1930년대 초부터 해방 2년 후 월남하기까지 興南 근교 西湖의 바다를 향해 뻗어 내린 야산 중턱에 자리 잡은 솔밭 가 외딴 집에서 지내게 됩니다. 시집 『芭蕉』, 『하늘』,『眞珠灣』, 『三八線』의 산실이 이 집입니다. 이 집에서는 정원과 이어져 있는 솔밭 너머 멀리 은빛으로 반짝이는 바다와 머리 위 아찔한 높이에서 바다 끝으로 이어진 하늘만이 눈에 가득히 들어 왔습니다. 사계절 집은 하늘과 바다와 바람과 황혼과 주변에 널려 있는 자연에 속하는 것들의 온갖 변화에 묻혀 있는 셈이었습니다. 앞마당은 10여 년 간 선친이 매일같이 손보아 온, 후면에는 축산(築山)을 끼고 도는 오솔길도 있는 화단이 가득히 차지하고 있었으니 마당이라기보다 화단의 식구들을 바라보고 거닐고 서서 생각에 잠기기도 하는 산책의 공간이었습니다. 집은 옆구리에 판자 담장을 두르고 있었지만 이것은 경계선이라 하기에도 좀 무엇한 있으나 마나한 것이었습니다. 몇 그루의 소나무, 향나무, 오동나무, 무궁화나무, 복숭아나무가 판자를 대신한 곳도 있어서 이어져 있는 솔밭이 마치 저희 정원의 일부처럼 되어버렸기 때문입니다.

  길손의 눈에는 이런 속에 고적하게 앉아 있는 저희 집은 세상 밖의 고도처럼 비췄을지도 모릅니다. 실상 이 집에서 자란 아이는 사람에 대한 그리움을 그림자처럼 평생 달고 다니게 됩니다. 이 고적한 집과 낙원과 같은 정원이 선친의 시상의 산실이었습니다. 명상에 사로잡혀 걸음을 떼는 것을 잊어버리고 화단 앞에 서 계신 모습이 어쩌면 집 식구들에게는 가장 익숙한 아버지의 모습이었는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이 전원에 묻혀 있는 산실에서는 어떠한 시어(詩語)들이 모습을 드러내었는가? 분명히 시재(詩材)가 자연의 갖가지 아름다운 것들 특히 정원의 식구들인 것이 틀림이 없었고 그래서 김동명의 시는 흔히 「현실을 떠난 목가풍의 전원시」로 처리됩니다. 조연현이 그렇게 규정했고 백철도 「완고하리만큼 古人의 詩境을 본받은 하나의 歸去來辭」로 보았던 것입니다. 두 사람 모두 현실을 떠나 전원에 한거(閑居)한 자의 서정시로 본 것입니다. 그러나 실제로 살펴보면 그 분의 시에는 목가풍의 정서와 거리가 멀고 전원적 서정으로 싸잡을 수 없는 시어들이 대목마다 등장하고 있는 것을 알 수 있을 것입니다. 실제로 몇 편 살펴보기로 하겠습니다.

 「祖國을 언제 떠났노」로 시작하는 시 『芭蕉』는 「네의 그 드리운 치맛자락으로 우리의 겨울을 가리우자」는 시련(詩聯)으로 끝을 맺습니다.

 『水仙花』의 첫 연은

  「그대는 차디찬 意志의 날개로

    끝 없는 孤獨의 위를 날으는

    애달픈 마음。」입니다.

그리고 이 시는

  「나도 그대를 따라 저 눈길을 걸으리」로

끝납니다.

  시 『蘭草』를 보기로 하겠습니다. 이 시의 4,5,6연은 다음과 같습니다.


           蘭草 잎 너머로

           暴風이 이는구나

           아아 東亞는 이제 또

           어데로 가려노


           蘭草 잎 너머로

           世紀의 狂暴를 보다。

           蘭草 잎 밑에서

           弱者의 슬픔을 삼키다.


           蘭草에게

           忿怒를 말하다

           蘭草, 香氣로

           내 마음을 달래다.


  또 시인은 시 『하늘Ⅰ』의 6연에서 다음과 같이 읊습니다.


           헤아릴 수 없는 깊음 속에

           나의 悲憤을 잠그다。


  위에 적은 시련이나 시구들은 조국 상실의 현실을 떠나서는 이해할 수 없는 것들입니다. 그것은 모두 조국 상실의 비분 비애, 지배자에 대한 분노와 저항의 의지를 표출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는 몸은 전원에 두고 있었지만 실상 운명적으로 그에게 주어진 시대현실의 한 가운데 있음을 알리고 있는 셈입니다. 다시 좀더 살펴보기로 하겠습니다.

출처 : 한 작은 풀꽃의 현대사 체험이야기
글쓴이 : 비탄과 희망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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