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짓날이 시어머님 기일이다
아산도고에 편히 잠들어 계신다
환갑 다음해에 돌아가셨으니 우리나이로 62세였다
요즘으로는 너무 일찍 돌아가신 것이다
아산을 가는 길에 공주를 지나가는데
밤으로 유명한 고장이니만큼 온통 하얀 밤꽃천지다.
공주 시작점부터 끝나는데까지...
밤꽃이 흐드러지게 피고 햇감자
햇마늘이 나는 계절 하지...
어머님은 당신이 심어놓은 마늘
감자도 수확하지 못한채
돌아가셨다.
이젠 어머님기일이어도 아무도
안온다
처음10년간 다섯딸들이 모두
참석해서 추도예배 드리면서
눈물콧물을 흘렸는데
이젠 돌아가신 어머니보다 나이가
더 많아진 시누이들이다
우리 어머님 성격이 강해서 살아
생전에는 딸들을 만나면 딸들과
종종 말다툼을 하셨다
딸들은 주로 엄마가 자기들한테
잘못했던거를 성토하면 어머님은
더 큰 소리로 딸들을 제압하시곤했다.
강해서 누구에게든 절대로 지지않는
어머님이 살아 생전에는 싫다고
하더니 돌아가시고나니
오히려 큰소리 치던 모습이
그립다고 딸들은 추억하곤했다.
내게는 너무 무섭기만했던 시어머님.
나에겐 미운정 고운정 들기도 전에
돌아가셨다
내가 결혼하고 1년 8개월만이었다
우리어머님이 천국에 가신 것은 확실하다.
어머님이 기도원에서 만났던 어느
시골교회 목사님을
몹씨 뵙고 싶어 하셔서 내가 그 목사님께 편지를 보냈었다.
어머님이 입원 하신지 20일만에
그 목사님이 오셔서
어머님은 반가워하며 눈물까지 지으셨다.
그 목사님은 기도를 끝내고 어머님이 주무신다며 조용히 가셨다
목사님을 보내드리고 내가 어머님의
다리를 주물러 드리려고 다리를
만지니 다리가 차가웠다
분명 좀전까지만해도 목사님을 뵙고
기운은 없어도 반갑게 인사하시고
기도를 받으셨는데...
의사가 와서 중환자실로 옮겨 여러
조치를 취했으나 결국 사망으로
판정이 났다
그러니까 기도중에 돌아가신거였다.
그런데 염할때 어머님의 얼굴이 미소를 띤 모습이어서 모두들 놀랐다.
나는 임종순간을 지켜봤기 때문에
어머님의 그 미소의 의미가 뭔지 알
수 있었다
어머님은 예수님의 품에 안겨 가신
것이다.
처음에 병원에 입원하실 때는 이렇게 빨리 돌아가실거라는
생각은 전혀 못했었다.
결핵성늑막염이었는데 당뇨가 좀
심하셔서 몸의 발란스가 깨어지고
있었다. 계속 복수가 찼고 숨이
차다고 하셨다.
입원 20일만에 돌아가셨는데 나는
10개월된 딸을 돌보랴 시어머니
돌보랴 너무 힘들어서 몸무게가
5키로가 빠져서 43키로가 되었다
결국 어머님 장례식 치르는 중에 내가 쓰러졌다.
어머님 간호중에도 병원에서 며느리가 먼저
쓰러지겠다고 간호사나 주변사람들이 말했었다
한동안 나는 제대로 걷지도 못하고 비틀거릴정도였다.
시누이들은 내가 시아버님 병간호를
하지 않고 요양병원에 보낸 것에 대해(내가 한것도
아니고 남편이 나서서 결정한 일이다) 내게 불만이 많았지만 난 시어머님께는 정말 최선을 다해서 했다.
내 친정아버지가 돌아가실 때도
그렇게는 못했었다.
시누이들은 어머님께 내가 어떻게
했는지 보지도 못했고 갑작스런
어머님의 죽음에대한 슬픔이
더 컸기 때문인지 나에게 왜 미리
알리지 않았나 하며 원망의 말을
했다
그러나 내가 48kg이었던 체중이
20일만에 5키로가 빠졌고 쓰러지기
까지 했으면 짐작은 할 수 있지 않을까.
그런데 오히려 병이 이렇게 위중한데 미리 안알렸다고 원망만 들었다
우리도 설마하니 돌아가실줄은 몰랐는으니 어쩌랴...
암튼 나도 어머님처럼 기도 받는
중에 주님품에 안기는게 소원이다.
늘 나약하기만한 내가 지금까지
살아있는 것만도 감사하다
남은 인생 주님께 영광 돌리는 삶을
살아야할텐데
그 반대로 살고 있으니 정말 죄스럽기만하다
일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