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1년 인터넷카페라는거 처음 알고
카페에 올린 글을 오늘 다시 읽어보다가
옛날 일기를 다시 읽어볼 때처럼 감회가 새로와 올려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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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날 저녁 찬거리 때문에 동네 슈퍼에 갔을 때의 일이다.
'골파 3단에 1000원!!' 판매원 총각이 외치고 있었다.
순간 너무 싼값에 놀라 판매대 앞에 갔다가 "앗차 싶어서
얼른 단념하고 돌아섰다.
이유는 단 한가지. 아무리 싸도 그 많은 파를 나혼자 다듬을
자신이 없어서였다.그 양이 실로 장난이 아니었다.
골파를 뒤로 하고 매장을 한바퀴 도는 동안 총각은 계속
방송을 해댔다.자기를 좀 도와 달라고.
파 20단 구매해야 할 것을 잘못해서 200단이 와서
이렇게 싸게 파노라고. 동정심에 호소 하기도 했다가,
파를 사는 것이 애국하는 길이라며 말도 안되는 애국심에
호소 하기도 하며 목이 쉬어라고 떠들어대도 다들 나같은
마음인지 싼값에도 불구하고 아무도 거들떠 보지 않았다.
나는 '이건 내 능력 밖이다.절대 동정심에 넘어가지 말자.
그리고 절대 싸구려에 넘어가지 말자 '다짐하며
장보기를 끝내고 계산대로 가는 도중 그총각 앞을 지나게 되었다.
그 총각은 마이크를 잠시 끄고 쉬면서 옆에 판매원 아가씨랑
얘기를 하고 있었다."나 참 큰일 났네. 왜 이렇게 안사가지?
야,20단 주문했는데 어떻게 200단이 왔냐.이거 오늘 못팔면 어떡하냐.
큰일이네."
순간 그 총각의 진심어린 걱정에 결국 넘어가고말았다.
못말리는 아줌마의 동정심이 발동한거다.
당장의 저녁식탁에는 아무 도움이 안되는 골파3단을 사들고 와서는
그 뒷처리 때문에 고민 아닌 고민을 하게 되었다.
이제까지 한번도 그런 일은 해준적이 없는 남편에게 부탁하는
수밖에 없었다.언젠가 한번 부탁했다가 보기 좋게 거절 당한적도
있어서 또 거절 당할까봐 긴장까지 되었다.
그총각의 불쌍한 처지까지 들먹거리며 남편에게 부탁을 했다.
"나 그런거 못해." 역시 보기 좋게 거절 당했다.아니 외면 당했다.
남편의 거절은 대개 한마디면 끝이다.왜냐면 그렇게 말해놓고
잠자러 가버리니까.시간이 어떻게 됐든 상관없다.
울남편은 아무때나 자니까.
화가 났다."그럼 나혼자서 2,3 시간을 까리?"
그래도 묵묵부답.다시 회유책 "여보,파김치 맛있게 담어줄께.
일생에 처음이자 마지막 부탁이야.나혼자 이거 깠다간 오늘 밤 12시
안에 못끝나.여보 제발 이번 한번만이야."통사정을 했다.
"그럼 이게 처음이자 마지막이다."
'내 참 더러버서. 파김치 담가서 나혼자먹냐'싶었지만
그래도 꾹 참고 "알았어 여보 이번 딱 한번이야."
담부턴 꼭 깐파만 사오기로 약속하고 남편의 도움을 받게 되었다.
그러고 까기를 시작해서 한시간만에 끝났다.
토토 때문에 바닥에서 못하고 식탁에 올려 놓고 했더니
팔꿈치도 아프고 어깨도 아팠지만 우리는 파를 까면서 오랫만에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다.
"여보 거봐 나혼자 깠으면 3시간 짜리였어.
자기 덕분에 한시간에 끝났잖아.그리고 이렇게 얘기 하면서 까니까
정말 좋다.담에 또 사와야겠다."
남편 왈 "그래도 담엔 다 까놓은거 사와." 으이그 못말리는 저 무뚝뚝.
근데 이번 파김치는 이제까지 내가 담가본 것 중에서 가장 맛있는
파김치가 되었다. 남편도 인정했다.
다시 또 안깐파를 사와도 괜찮을 것 같은 예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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