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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

부부의 날에...

어제 부부의 날에 우리부부의 인연에 대해 생각해보았다.
그럴러면 우선 고1때 내짝꿍이야기부터 해야한다.
 
여고시절을 추억해본다. 갓 여고생이 되었을때...
우리 고등학교는 중학교때 아이들이 거의 그대로
올라왔다. 그러니까 한반에 60명중 대부분은
우리 중학교때 아이들이었다.그런데 내짝꿍은 다른
중학교에서 온 아이였다
 
짝꿍과 호기심에 서로 이런저런 신상이야기를 묻고
답하다보니 그애집이 우리집에서 고개하나(테미고개)
넘으면 되는 곳에 있었고 같은 국민학교를 나온 국민학
교동창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래서 우리는 짝꿍이 된 첫날부터 뜻밖에 공통점이
있다는데 신기해하며 첫날 하교를 같이했다.
대동에 있는 우리학교에서 대전고등학교까지 같이가서
대고오거리라는 곳에서 나는 보문산쪽으로 그녀는
충남대학교쪽으로 갈라져갔다.
그러나 다음날부터는 그녀의 끈질긴 설득으로
테미삼거리까지 같이가서 헤어지는 걸로했다.
그래야 나랑 더 오래 같이 있을수 있다는 그녀의
감언이설에 내가 넘어가 주었다.
 
다음날부터는 등하교를 매일 같이하고,도시락도 같이
먹고 하루종일 학교에서 같이 부때끼고 주말엔 서로의
집을 오가며 숙제도 하고, 놀기도 하는 아주 단짝 친구가
되었다.서로 뗄래야 뗄 수없는 같이 엉겨붙어 다니는
사이가 된것이다
 
그러나 시간이 지날수록 성격이 다른게 드러나서
많이 부딪치기도했다.그녀 때문에 학교에 지각하는
일도 생기고 불편한 일이 하나둘씩 쌓이게 되었다.
그친구는 명랑하고 외향적이며 적극적인 성격인 반면
나는 내성적이고 소극적이었다.내입장에서는 그녀의
성격이 부럽기도했다.하지만 어떤 때는 그녀가 하고자
하는 바를 어떻게 해서라도 관철하는 성격이라서 힘들고
피곤했다.
 
내가 하기 싫어하는 걸 그녀가 요구할 때 싫다고 분명히
의사표현을 해도 그녀는 어찌나 끈질기게 설득 하는지
끝내는 그녀의 의도대로 해야만 해서 몹시 난감할 때가
있었다.화를 내야만 그녀가 고집을 꺾으니 넘 피곤했다.
 
그럴 때 그녀의 단골멘트가 "우린 둘도 없는 친구잖아.
난 부모님없이는 살수있어도 너없이는 못살아.."
처음엔 그녀의 말에 너무 감동했고 나는 그녀를 그 정도
까지는 생각하지 않는 것에 속으로 미안해했다.
 
그러나 회를 거듭할수록 그말의 신뢰성은 떨어졌고
자기의도를 관철 시키기위해 습관적으로 하는 말에
지나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하지만 잘할땐 입의
혀처럼 미안할 지경으로 잘해주는데 그런 다음엔 꼭
그 반대급부를 요구하곤했다.이렇게 독특한 친구는
내평생 그애 말고는 본적이 없다.
 
그녀와의 교제는 그후로 내가 사람을 사귀는데
많은 영향을 주었다.내게 너무 잘해주는 사람을
경계하게 되었다. 조금이라도 그녀와 비슷한 성향만
보여도 피하게 되었다.나중엔 이성교제에까지도
영향을 미쳤다.나한테 잘해주는 사람을 보면 그 저의를
꼭 따져보게 된다.
 
그러나 그런 문제만 빼면그녀는유쾌했고 명랑하여
재밌게 지낼 수 있었다.게다가 그녀는 자기의 단점이나
걱정거리를 솔직하게 털어놓는 편이어서 그런대로
마음을 주고 받을 수는 있었다.
 
고2때 그녀와 나는 다른 반이 되어 자연스럽게 소원해
졌으나 고3때 다시 같은 반이 되어 붙어다니게 되었다.
그녀는 역시 나를 둘도 없는 친구로 꼽았으나
나는 그정도는 아니어서 그녀의 그런 표현에 좀 난감했다.
내가 순수하지 못한건가 자책을 하곤했다.
 
그녀는 교회를 열심히 다녔는데 그녀의 밝은성격때문에
교회오빠들에게 인기가 많은듯 했다.그녀는 교회오빠들과
썸씽이 많았다.만나면 주로 그녀의 교회오빠들 이야기를
듣는게 일이었다. 우리는 그녀가 열거하는 오빠들 이름
기억하기도 바빴다.
 
약간의 과장을 가미하여 극적이고도 재밌게 이야기하니
그녀 주위에는 늘 사람이 많았다.그리고 우리에게 연애나
데이트시에 지켜야할 에티켓같은 걸 알려주어 실제로
활용도 했었다.그녀의 연애에 주로 내가 이용되었다.
교회오빠들 하고 늦도록 놀면서 나랑 놀았다고 부모님께
거짓말을 하곤했다.
그녀의 부모님은 당신 딸의 말보다는 내말을 더 신뢰
하시니 그녀가 이용하기에 좋았던 것이다.그러나 나는
그녀가 나를 그런식으로 이용하는 것이 정말 싫었다.
그러나 독특한 그녀 덕분에 여고시절 추억도 많다.
 
우린 대학때는 같은 대학을 다녔는데 안맞는 부분때문에
내가 그녀에게 절교를 선언했다. 이런 일은 내인생에서
처음이자 마지막이었다. 친구와 절교를 선언해본 사람은
그리 많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그녀에겐 내가 감히 흉내낼 수없는장점이
있었는데 그건 자기 가족을 위해 헌신봉사하는 것이었다.
그녀에겐 나이차이가 많이 나는 오빠가 있었는데
우리가 고1이던 해에 그 오빠가 결혼을 했다.
그 오빠는 대학을 졸업하고 금성전자에 다니고
있었는데 결혼하고 바로 올케언니는 놔두고 혼자서
일본연수를 가게 되었다.
 
그녀의 올케언니는 남편도 없이 시댁인 그녀의 집에서
지내다가 아이를 낳았다.그런데 그 올케언니가 아이를
낳자마자 시름시름 앓았다.병명이 무언지도 모르고
이병원 저병원 전전하다가 아기가 백일 되었을 무렵
갑자기 세상을 떠났다. 이일은 내게도 충격이었었다.
 
그녀의 오빠는 잠시 귀국해서 장례만 치루고 다시 일본으로
떠났.고 아기는 그녀와 그녀의 엄마손에 남게 되었다.
연세가 많으셨던 그녀의 엄마보다는 고등학생인 그녀가
주로 그 조카를 돌보았다. 물론 일하는 사람의 손을
빌렸지만.
 
뿐만아니라 대학에 가서도, 그리고 그녀가 결혼을
하고서도 그조카를 자식처럼 데리고 가서 중학생이
될때까지 열심히 키웠다. 그것도 힘들어 하지 않고
명랑하게 열성으로 조카를 돌보는데 정말 존경스러웠다.
 
그녀의 오빠는 자기 아이와 상관없이 사는 것 같았다
한국에 들어 와서도 재혼한 여자와 살면서 아이둘을
낳도록 그오빠는 자기아이를 데려가지 않았다.
그리고 다시 미국으로 연수를 떠났는데 재혼한 여자와
거기서 난 아이들만 데려갔다.그녀의 조카는 중학생이
되어서야 미국에 있는 자기아버지집에 가게 되었다.
그녀는 나중에 그 조카의 결혼식까지 치뤄주었다.
조카를 키우면서 그녀가 자기 오빠를 원망하는 말을
하는 걸 한번도 들어 본적이 없었다.
.
내가 대학을 졸업하고 직장을 다니고 있을 때 갑자기
몇년간 만나지도 않던 그녀로부터 편지가 왔다
편지형식을 띤 청첩장이었다.가야할지 말아야할지
망설였다. 몇년간 교류가 없었는데...
예식장도 대전이 아닌 서울이어서 핑계대고가지말까
하다가 그래도 한때 절친이기도 했고 그녀의 아버지는
나의 대학은사님이시기도하고 해서 숙고끝에 결혼식에
가게되었다.
 
결혼식에 온 친구들은 그녀가 결국 교회오빠들중 한명과
결혼을 한다면서 웃었다.
 
그때부터 다시 그녀와 연락을 하고 지내게 되었다.
하지만 전과는 달리 아무래도 경계를 하게 되었다.
그녀는 서울서 살았지만 친정인 대전에 내려올 때마다
연락을 해서 만나곤했다
 
어느날 그녀의 소개로 한 남자를 만나게 되었다.
그는 아무 표정도 없고 말도 없어서 나와의 만남을
어떻게 생각하는지 도무지 헤아릴 수가 없었다.
그후 만나자는 전화가 와서 여러번 만났지만
별말없이 밥먹고 차마시고 헤어지는게 전부였다.
다음 만남을 약속하지도 않았다.
 
그 친구가 중간에 끼어들어 적극 이어주어서 간신히
만남이 이어지긴했지만 만남에 진전도없고 만나도
별말도 없었다.그땐 나도 나이가 꽉차서 웬만하면
이번에 결혼 해야지 하는 생각으로 만나고 있는데
영 답답했다.단지 우리사이에는 공통화제가 하나
있었는데 바로 그녀가 애지중지 키운 조카였다.
 
그녀의 조카는 바로 그의 큰 누나의 아들이었다.
그러니까 아이를 낳고 백일만에 세상을 뜬 친구의
올케언니가 바로 그의 큰누나였던 것이다. 내친구는
자기조카의 외삼촌을 내게 소개한 것이었다.
 
내가 그 조카와 안타깝게 돌아가신 그의 큰누나의 일을
처음부터 소상히 알고 있었기 때문에 그나마 대화가 좀
될 수 있었다. 데이트에 종종 그 조카가 동반되었다.
그가 곧 우리남편이다. 내인생의 단맛,짠맛,신맛.쓴맛을
모두 알게 해준 나의 진짜사랑 우리남편...ㅎㅎ
 
 
27살의 나이에 핏덩이 조카를 두고 갑자기 세상을
뜬 그 누나 때문인지 남편은 늘 얼굴이 좀 어두웠다.
그일이 남편이 대학을 갓 들어갔을때 일이었다고 한다.
그런데 나는 그친구의 조카외가에 대해서는 한마디도
들어본적이 없었다.
황당한건 그 조카였을거 같다.어린시절 내내 보아왔던
고모의 친구가 갑자기 외숙모가 된 것에 대해서...
결국 고1때 그녀를 만난건 내미래의 남편을 만나기위한
포석이었던건가 싶다. 그 인연을 생각하면 참 묘하고
신기하다.
내가 친하게 지내기는 했지만 한때는 회피하기까지 했던
친구 덕분에 남편을 만났다는 것도 참 아이러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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