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분간/ 나희덕
이 꽃그늘 아래서
내 일생이 다 지나갈 것 같다
기다리면서 서성거리면서
아니, 이미 다 지나갔을지도 모른다.
아이를 기다리는 오분간
아카시아꽃 하얗게 흩날리는
이 그늘 아래서
어느새 나는 머리 희끗한 노파가 되고,
버스가 저 모퉁이를 돌아서
내 앞에 멈추면
여섯살배기가 뛰어내려 안기는 게 아니라
훤칠한 청년 하나가 내게로 걸어올 것만 같다
내가 늙은 만큼 그는 자라서
서로의 삶을 맞바꾼 듯 마주 보겠지
기다림 하나로도 깜박 지나가 버릴 생,
내가 오래도록 돌아오지 않을 때쯤
너무 멀리 나가버린 그의 썰물을 향해
떨어지는 꽃잎,
또는 지나치는 버스를 향해
떨어지는 꽃잎
또는 지나치는 버스를 향해
무어라 중얼거리면서 내 기다림을 완성하겠지
중얼거리는 동안 꽃잎은 한 무더기 또 진다.
아, 저기 버스가 온다
나는 훌쩍 날아올라 꽃그늘을 벗어난다.
~~~~~~~~~
내 지나온 세월이 이시에 다 있다
기다림의 완성이라는게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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