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행의 즐거움
농촌에서 살 때 이따금씩 제 집에 들르곤 하던 할머니 한 분이 있었습니다. 남편은 세상을 떠나고 자식은 도시로 떠나 혼자 사시는 할머니였지요. 할머니가 들르시면 저는 할머니가 좋아하시는 커피를 타 드리고는 했습니다. 어느새 시골에도 커피가 자리가 잡아 웬만한 차 대접은 커피가 되고 말았습니다.
마주 앉아 커피를 마실 때마다 할머니는 “내 죽은 담에 내 속을 열어 보문 숯검정뿐일 거예요.” 하는 말을 즐겨 하시곤 했습니다. 늘 웃고 사시는 분이지만 가슴 속에는 다른 이들이 짐작하지 못하는 아픔이 있었지요. 할머니가 마음에 있는 얘기를 하면 덩달아 마음이 저리곤 했습니다.
커피를 다 마실 때가 되면 할머니는 예의 익숙한 질문을 하고는 했습니다. 커피가 맛있다며 커피를 어떻게 탔냐고 물으시는 것입니다. 설탕 몇 숟갈에 크림 몇 숟갈을 넣었느냐 물으시는 것이지요. 달게 드시는 할머니를 위해 설탕을 조금 더 넣었을 뿐 별다를 것 없는 커피인데도 할머니는 그렇게 늘 맛있게 드시고는 했습니다.
할머니께는 대답을 하지 못했지만 짐작이 되는 것이 있었습니다. 할머니가 묻는 맛있는 커피 맛의 비결은 필시 함께 마시는데 있는 것이 아닐까 싶었습니다. 같이 마주앉아 마음에 있는 이야기를 나누며 마시기에 그 커피가 맛있는 것이겠지요. 할머니가 집에서 혼자 타 마시는 커피란 아무리 설탕을 많이 넣어도, 아무리 좋은 커피를 탄다 하여도 그것이 맛있게 느껴지진 않았을 것입니다. 어떤 커피를 어떻게 타느냐 하는 것보다는, 그 커피를 누구와 마시느냐 하는 것이 그 맛을 정한다는 생각이 들곤 했습니다.
얼마 전 대학입학 30주년을 기념하여 2박3일 일정으로 친구들과 여행을 다녀왔습니다. 흩어졌던 친구들을 오랜만에 만나니 감회가 새로웠습니다. 얼굴엔 주름이 지고 머리는 반백이 되고, 세월이 지나간 자국이 골고루 모두에게 있었습니다. 그러면서도 전에 모르던 중후함을 느낄 수도 있었습니다.
여행 중에 한 친구가 우리 모두에게 물었습니다. 서울에서 부산까지 가는 가장 빠른 방법이 무엇인지를 아느냐고요. 서울에서 부산까지라면 승용차나 고속버스, 혹은 고속열차, 아니면 비행기 등이 있을 것이고, 그렇담 비행기 아닐까? 생각은 이내 그랬지만 그렇다고 친구가 묻는 질문의 의도가 그런 것은 아닐 터, 대답이 궁금했습니다.
역시 대답이 재미있고 의미도 있었는데, 서울에서 부산까지 가장 빠르게 갈 수 있는 방법은 사랑하는 사람과 같이 가는 것이었습니다. 아하, 그렇겠다 싶었습니다. ‘두 점 사이를 잇는 최단거리는 사랑이다’라는 말이 얼핏 떠올랐습니다. 사랑하는 사람과 가면 아무리 먼 길도 금방이겠지요. 잠깐 이야기를 나눴다 싶은데 이내 목적지에 도착을 할 것입니다. 오히려 더 함께 하지 못하는 것이 아쉽게 느껴질 것입니다. 그 때 느끼는 아쉬움이나 홀가분함은 감히 비행기가 따라올 수 없는 마음의 속도일 것이고요.
좋은 동행은 즐겁고 멋있고 든든한 일입니다. 마주하여 마시는 커피도 맛있고, 먼 길도 금방이고요. 동행의 즐거움을 제대로 누리는 우리 생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 한희철목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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