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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

공주 석장리 구석기유적지


석장리구석기 유적지가 달라졌다
매표소와 입구 오른쪽에 새로운
건물이 들어섰다.







새로 생긴 휴게소건물



입구 오른쪽에 지어진 건물이
휴게소였다


휴게소 내부

들어서는 순간 탄성이 절로 나왔다
창밖으로 유유히 흐르는
금강이 보였고 그걸 편히
바라볼 수 있도록 편하고
세련된 소파와 의자가 배치
되어 있었다


금강을 바라보며 앉아 있을 수
있는 곳...
뷰가 좋은  카페를 연상시킨다.





창밖으로 벗나무와 금강이
보인다
벗꽃피는 봄날의  이곳
풍경을 상상해본다.


벗나무와 금강


어제 내린 비로 금강물은 완전히
황토색 강물이 되었다









손보기 기념관

이곳을 발굴한 연대 사학과의
손보기교수를 기념하는 기념관
선사예술이 전시되고 있었다










구석기유물 전시관




인조 동굴



입구에 해설을 올려본다

위치: 공주시 석장리동 118번지 일원 지정번호: 제 334호(1990년 10월 31일 지정)

석장리 유적은 우리나라에서는 처음으로 우리의 역사가 단군시대청동기시대 보다 앞서는 구석기 시대부터 이 땅에서 사람이 살아왔다는 귀중한 사실을 밝히게 한 유적이다.

1964년 봄 미국인 대학원 학생인 엘버트 모어Albert Mohr와 그의 아내 샘플 Sample이 석장리 강변을 찾았다. 이미 부산의 영도 동삼동 신석기시대 조개더미 유적을 발굴한 경험으로 한국 선사시대에 관심이 있었던 모어는 그해 홍수로 범람했던 석장리 금강가를 답사 하였는데, 무너진 강변 지층에서 뗀석기를 찾았다. 당시 한국 구석기의 존재는 공식적으로 알려진 바가 없었기 때문에 대부분의 사람들은 의심했지만, 연세대학교 사학과 교수였던 손보기 선생1922~2010은 공주 석장리 강변을 찾아 구석기 유적의 존재를 확신했다. 바로 문화재관리국의 발굴허가 절차를 거쳐 그 해 11월 11일부터 연세대학교 대학원 사학과를 중심으로 발굴이 시작되었다. 우리나라남한 최초로 시작된 구석기 유적 발굴조사였다. 1972년까지 매해 발굴이 진행되었고, 구석기시대 전기·중기 · 후기에서부터 중석기시대까지 문화층이 확인되었다. 신석기 · 청동기시대의 유물도 찾아져 선사시대 전시기에 걸쳐 사람이 살았던 매우 중요한 유적임이 밝혀졌다. 이후 2010년까지 총 46년에 걸쳐 13차례의 발굴이 진행되었다.

해방 이후 한국 고고학이 정립되기 이전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방사선탄소연대측정법Cl4dating을 도입하여 고고학 조사에 과학적 방법을 시도한 점, 석기와 구석기 용어들을 한글로 만들어 대중화에 공헌했던 점, 구석기시대 쌓임층, 석기, 집터, 식생 등에 대해 장기적인 연구를 종합하여 한국 구석기 문화를 정립한 성과들은 한국 고고학사의 기념비적인 사건으로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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