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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詩)

꽃씨를 심어요 / 박노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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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씨를 심어요 / 박노해


지난 가을
그대가 보내준
편지봉투에
꽃씨를 받아 넣었죠

눈 내리는 겨울밤에
책장 선반 구석에서
봉투 안의 꽃씨들이
소곤소곤 속삭이는
소리에
몸을 뒤채며 봄을
기다렸죠

첫 봄비가 내리고
그대가 보내준 편지를
다시 읽으며
봉투에 간직해온
꽃씨를 심어요

내가 여기 태어나
지구에서 가장
좋아하는 건
꽃과 나무, 그리고
그대이죠

비바람과 눈보라
속에서도
원망하지도 않고
포기하지도 않고
최선을 다해 꽃과
향기를 내어주고
한 생의 결실을 이
작은 꽃씨에 담아
긴 겨울날을 우리
함께 걸어왔죠

좋지 않은 일들이
한꺼번에 오고
좋지 않은 자들이
봄을 밟고 와도
눈 녹은 땅에 꽃씨를
심어요

지구에서 보낸 한
생의 길에서
곧고 선한 걸음으로
꽃을 피워온 그대
사랑이 많아서 슬픔이
많았지요
사랑이 많아서 상처도
많았지요

그래도 좋은 사람에게
좋은 일이 오고
어려움이 많은 마음에
좋은 날이 오고
눈 녹은 땅에 씨
뿌려가는 걸음마다
봄이 걸어오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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