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화감상에서는 미술 작품이 전하는 메세지를
통해 감상자 혹은 내담자가 공감을 경험한다.
공감 없이는 위로란 존재하지 않으며 위로에
공감이 없으면 영혼 없는 위선적 행위가 된다.
위대한 예술은 한 작품으로도 감상자에게
이러한 공감을 불러일으키거나 위로를 전한다.66p
우리도 괴롭거나 우울한 기분이나 슬픔,애도 과정을
겪고 있을 때, 어떤 작품을 감상하면서 그 내용,색채,
구성이 바로 자신의 마음을 표현해 주며 어려움을
겪는 자신을 위로해 주는 경험을 할 수 있다.어떤 그림은 행복했던 기억, 즐거웠던 기억을 떠올리며 감상자에게 그 기억의 시간을 생생하게 현재화하여 내면의 힘을 준다. 그뿐만 아니라 고통을 표현한 그림에서
공감과 자기 동일시를 경험하며,감상자 자신 혼자만이 고통을 겪는 것이 아니라는 위로받는 느낌이 들
수 있다.이는 미술이 '삶의 한계와 실존위험에 대한
피난처를 제공'(Kossolapow,1975)하는 것과 같은 맥락이다.(67,68p)
Ott(1997)는 동서양의 모든 문화의 전 시대에 걸쳐
예술을 통한 무언의 치유효과는 고통 받는 사람의 상황에 영향을 주는 약제로 사용 되었다는 것을 증명하면서 예술을 "영혼의 약국"이라고 한다.(94p)
Leuteritz는 예술가들의 이런 능력을 Ott가 말한
"영혼의 코드"로 연결한다.그는 영혼의 코드를
받아들이는 데는 다소 오랜 학습과정이 요구되며
모든 감상자가 예술가가 지닌 이런 예술코드의
다양한 수신기관을 똑같이 받아들일 수 없다는
Ott의 견해를 수용한다. 그러나 그는 미술치료에서
감상자인 내담자가 미술작품감상에 몰두하면서
기쁨과 슬픔,감격과 동정심을 느끼게 되고 이를
통해 자신의 한부분을 발견하게 된다고 한다.(94p)
Leuteritz와 Ott는 미술치료에서 명화감상을 통한
환자의 내적 재창조에 대한 중요성과 필요성을
알리고자 하였다. 나아가 Leuteritz는 수용적 미술
치료에서 감상의 보편적, 치유의 의미가 환자뿐 아니라 일반인에게도 매우 중요함을 강조한다. 즉 매일
수많은 사람이 음악을 듣고, 그림과 건축물을
감상하고 공연을 보며 시를 읽으므로써 자기를
치유하고 있다는 것을 우리가 잊어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이는 수천 년 동안 존재해 온 예술이 인간실존을
위한 치유의 뿌리며,희망이라는 것을 상기시킨다(97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