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가 부여를 가보고 싶다고 했다.
중학교 때 수학여행으로 가보고
안가봤다고...
그리하여 부여로 go~go~
수학여행 코스로 갔던 곳
정림사지 오층석탑-부여박물관-
궁남지-부소산 이렇게 다녔다.
부여 첫방문지 정림사지 오층석탑
나도 오며가며 길에서
보이는 것만 봤지
정림사지 오층석탑을 일부러
보러 갔던건 아이들
어릴 때였다
[정림사지]
백제 성왕은 538년 봄에 지금의 부여인 사비성으로 도읍을 옮겼다. 왕궁과 관 청을 비롯하여 사비도성 안을 중앙·동·서·남·북등 5부로 나누고 그 안 에 거주지를 조성하는 도시계획과 더불어 사찰이 건립되었다. 백제가 사비성 으로 천도하던 시기의 도성의 모습이 중국 사서 주서 백제전에는 "절과 탑이 매우 많다"라고 적혀있다.
사비도읍기의 사찰 가운데 가장 중심적인 위치에 있었던 사찰은 단연 정림사 지이다. 게다가 정림사지는 나성으로 에워싸인 사비도성 공간내에서도 중심 지에 자리 잡았다.
(정림사지내 해설판에서)
그러니까 사비는 계획도시였던 것이다.
멀리서 보면 작아보이지만
가까이서 보면 의외로
웅장해 보이는
정림사지 5층석탑
정림사지 오층석탑이
당평제탑이라고 불리웠다고한다
부여 정림사지 오층석탑의 설립 배경에 대한 기록이 남아 있지 않아 언제 석탑이 세워졌는지 알 수 없지만, 백제가 사비로 천도한 시기인 6세기 중엽에 석탑이 설립된 것으로 추정된다.
부여 정림사지 오층석탑의 1층 탑신 4면에는 당나라의 장군 소정방(蘇定方)이 백제를 평정한 후에 새긴 기공문(紀功文: 공훈을 오랫동안 기념하기 위해 새긴 글)이 있어 한동안 '평제탑(平濟塔)' 혹은 '소정방탑(蘇定方塔)'이라고 불리기도 하였다. 1942년 절터 발굴조사에서 '太平八年成辰定林寺大藏當草(태평팔년술진정림사대장당초)라고 적힌 기와가 발견되었는데, 기와에 적힌 ‘定林寺(정림사)’라는 글씨를 근거로 절터의 이름이 '정림사지'가 되었으며 이 석탑의 이름도 '부여 정림사지 오층석탑'이 되었다.
(정림사지 내 안내판에서)
비록 백제는 망하였으나
이 예술품만은 아니 망하였다.
당인의 필적이야 있든 없든
또한 평제든 아니든
탑은 탑대로 이름을 전한 것이다.
(가람 이병기)
새삼 당나라군에 짓밟혔을
백제주민들의 처참한
상황이 그려져 몸서리가 쳐졌다
그 시대에도 외세를 끌여들여
전쟁을 치뤘다니...
고려시대 것이라고 한다
정림사지오층석탑에서
차로 3분 거리에 있는
부여박물관으로 왔다
우리 애들 어릴 때 와보고
온 적이 없는 박물관이다
백제금동대향로(이하 '대향로')는 1993년 12월 12일(일) 충청남도 부여군 부여읍 능산리에서 주차장 공사를 하던 중 발견된 백제의 향로이다. 이후 조사 결과 해당 향로가 발견된 주차장 공사 현장이 백제 시대 왕실의 사찰이 있었던 곳으로 밝혀졌다.
(출처:나무위키)
설명이 필요없는 백제의 자랑
백제의 아름다움을 대표하는
금동대향로다
국립부여박물관에서 차로 5분거리에
있는궁남지로 왔다
굵직한 우렁을 새콤달콤 무친
우렁무침이 가장 맛있었다
연잎밥은 18000원이었다
친구가 사주었다
궁남지에서 부소산성으로 왔다.
이곳 역시 궁남지에서
5분여 거리이다.
모두 가까이 있어서 다니기
좋았다
친구가 중3때 가봤던 고란사를
가보고 싶다고 해서 고란사를
향해 가는 길이지만
나는 갈 수 없었다
고란사는 급경사 내리막길을
가야 하는데 그 경사길을
오르내릴 수없어서
친구 혼자서 갔다
친구는 나보다 체력이
훨씬 좋아서 펄펄 날아다니는
정도이니...
혼자서 고란사를 다녀온 친구와
이 사자루에서 만났다.
친구는 중3때처럼 고란사에서
약수도 마시고 왔다고...
고란사 다녀오는 길은 친구도
쉽지 않았다고 했다
수학여행 따라가기는 여기서
끝났고 그후 부여 금사리성당을
갔고 다시 공주로 와서
무령왕릉-제민천 걸어서
풀꽃문학관 다녀오기까지 해서
이날 체력 좋은 친구따라
다니다보니 20000보를 걸었다.
친구는 고란사를 다녀왔으니
25000보쯤 걸었을거 같다